2009년 출애굽기 제11강
십계명을 주신 하나님
말씀 출애굽기 20:1-21
요절 출애굽기 20:2,3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하나님은 노예 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시내산까지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이곳까지 인도하신 목적은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 삼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노예 백성을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소망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들이 스스로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 언약을 지키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듣고 지켜야 할 언약으로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이 십계명을 공부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 계명을 모두 관계를 다루고 있는 계명으로 보고자 합니다. 십계명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과의 관계, 인간과의 관계, 물질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하는가를 가르칩니다. 사실 관계만큼 어려운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양한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또 어떤 사람은 몇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깊이 있는 관계성을 맺습니다. 그러면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맺어야 할 관계가 무엇이고 어떻게 맺어야 하는가 배울 수 있길 기도합니다.
첫째, 하나님과의 관계(1-11)
하나님은 십계명을 가르치시기 전에 먼저 얼마나 그들을 사랑하가를 다시 말씀하십니다. 2절을 보십시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하나님은 그들이 애굽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해 내셨습니다. 지난날을 돌이켜 볼 때 그들은 바로의 노예로 학대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들은 미래에 대한 소망이 없던 노예 백성이었습니다. 육신의 본성대로 살면서 조금만 어려우면 다른 사람 원망하고 불평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노예 신분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노예 근성대로 살아가던 그들을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 삼고자 하는 원대한 소망을 심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랑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에는 노예백성들을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키우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소망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주신 첫 번째 계명이 무엇입니까? 3절을 보십시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당시 근동의 국가들은 수많은 신들을 섬겼습니다. 이스라엘이 노예살이하던 애굽도 수많은 신들이 있었고 가나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신들이 많았을까요? 다다익선 즉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좋다는 말처럼 신이 많으면 그 신들 중 하나라도 자신을 도와 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또 참 신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무지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들을 많이 두는 것은 두려움과 무지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다신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하나님 앞에 두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다른 신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 외에 일체의 신의 존재를 거부하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신들” 이라고 말씀하실 때 ‘다른’ 은 ‘이상한’ ‘헛된’ 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섬기고 있는 수많은 신들은 이상하고 헛된 존재라는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재앙을 내리실 때 그 신들이 아무런 능력이 없는 헛된 존재라는 사실을 이스라엘은 체험했습니다. 홍해를 가르시고 광야에서 하늘로부터 만나를 주시며 반석에서 물을 내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믿고 섬기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과 그의 백성으로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또 이 말씀에 순종할 때 나머지 모든 말씀도 순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만이 유일하신 참 신이심을 고백하고 그 분만을 섬길 때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주변에는 온갖 신들이 있었습니다. 애굽에는 태양신과 나일강의 신이 있었고 가나안에는 바알과 아세라가 있었습니다. 이들이 애굽과 가나안 땅에 풍요와 번영을 가져다 준것처럼 보였습니다. 이것은 끊임없는 유혹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바알과 아세라를 하나님과 겸하여 섬기다가 타락했습니다. 그들이 섬기고자 했던 바알은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재물 곧 돈입니다. 이 돈의 위력은 때로 하나님보다 더 커 보입니다. 돈이 있으면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살수 있습니다. 병이 들어도 좋은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돈이 있으면 고액 과외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내 실력보다 더 나은 대학에 진학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돈 많은 남자가 좋은 신랑감 1순위입니다. 사실 돈이 있어야 세계선교도 하고 좋은 일도 많이 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돈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 뿐 아니라 돈도 함께 마음에 두고 섬기며 살아갑니다. 신앙의 위기도 돈 때문에 찾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돈의 위력이 아무리 커보인다고 할지라도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돈이 우리를 구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와 어두움에서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돈은 우리에게 잠시의 편리를 가져다줄 수는 있어도 우리를 인생의 위기에서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도리어 돈의 노예가 되게 하여 더 돈에 집착하게 만듭니다. 돈 자체는 선한것도 아니고 악한 것도 아닙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는 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돈을 하나님의 위치에 올려놓고 섬길 때 돈은 우리를 지배하는 주인으로 변합니다. 일생 돈을 섬기며 사랑도 없고 인격도 없는 이상하고 헛된 돈을 닮아가게 됩니다. 돈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립니다. 반면 하나님 한 분을 마음에 두고 섬길 때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닮은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물질주의 시대속에서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나에게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의 원대한 소망을 갖고 계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돈의 노예가 아니라 다스리고 관리하는 삶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두 번째 계명으로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위로 하늘에 있는 것들로부터 땅 아래 있는 것이나 물속에 있는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것뿐 아니라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만드는 것까지도 금하신 말씀입니다. 이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보이는 대상으로 만들어 하나님을 제한할 위험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뿐만아니라 눈에 보이는 신을 의지하고자 하는 이방 사람들과 같이 우상을 만들지 말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 번째 계명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망령되게 부른다는 것은 헛되이, 무익하게 부른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는 적극적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존귀히 여기고 영광스럽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각자 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씨, 박씨, 이씨, 신씨 등 성은 그 사람의 아버지의 성을 따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아버지의 성을 가지고 다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하면 아버지의 이름이 드러납니다. 반대로 우리가 잘못하면 아버지의 이름이 욕을 얻어 먹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를 하거나 아무곳에나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아예 부르지 않았습니다. 대신 ‘아도나이(주님)’이라는 단어를 대신 사용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불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능히 도우실 수 있는 분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그저 형식적으로 노느니 염불한다는 생각으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망령되게 부르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십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안식하신 날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열심히 일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킬 때 우리는 일 중독에 빠지지 않을 수 있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한 안식일은 단지 교회에 참석하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하며 안식하는 것을 배우는 날입니다. 우리는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안식일을 지킴으로 주님과 함께 안식하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안식일은 단지 쉬는 날이 아니라 적극적으로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날입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고백하고 주님이 주시는 안식을 누리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내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표시입니다.
이처럼 제 일계명부터 제 사 계명까지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소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다른 모든 것보다 하나님 한분을 가장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신명기 6:5에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때 다른 신을 마음에 두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때 여호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고자 하는 열망을 갖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때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기쁨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만을 사랑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되 질투하기까지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5절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가리켜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질투는 그 대상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그 대상을 사랑하지 않고 관심도 없다면 결코 질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대해서 질투하신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시는 것은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시되 질투하기까지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들은 이 하나님 한 분을 사랑하고 섬겨야 합니다. 또한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지만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푼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강조점은 죄가 몇 대에 이르고 은혜가 몇 대에 이른다는 숫자적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자에게 불순종하는 자와 비교할 수 없을만큼 넘치게 축복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나 뿐만 아니라 나의 후손이 복을 받을 수 있는 길입니다.
미국의 초기 청교도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한 영향을 끼쳤던 사람 중 조나단 에드워즈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에드워드는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신앙적인 여인과 결혼해서 신혼 초기부터 철저하게 기독교적 원리에 입각해서 하나님만을 섬기는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같은 때에 뉴잉글랜드에서 그와 같이 자란 동네 친구였던 맥스 쥬크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부자였고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 두 사람의 가계를 추적했습니다. 그들의 후손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에드워드는 오늘날까지 617명의 후손을 두었는데 대학의 총장을 지냈던 사람이 12명, 교수가 75명, 의사가 60명, 성직자가 100명, 군대 장교가 75명, 저술가가 80명, 변호사가 100 명, 판사가 30명, 공무원이 80명, 하원의원이 3명, 상원의원이 1명, 미국 의 부통령을 1명 배출했습니다. 맥스 쥬크는 1292명의 후손을 두었는데 유아로 사망한 사람이 309명, 직업적인 거지가 310명, 질병으로 단명한 사람이 440명, 매춘부가 50명, 도둑이 60명, 살인자가 70명, 그저 그렇고 그런 사람이 53명이었습니다. 이것은 극단적인 예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삶을 산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결과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를 약속대로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그뿐 아니라 자손 수 천대까지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때마다 맘몬의 신 돈이 우리 마음에 들어와 하나님과 돈을 겸하여 섬기도록 유혹할 때 우리가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는 삶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둘째, 이웃과의 관계(12-14)
제 5계명부터 10계명까지는 일반적으로 이웃 사랑에 대한 계명이라고 합니다. 그 가운데 5계명부터 7계명까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계명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가장 먼저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모든 인간 관계의 기초입니다. 부모는 자신을 낳아 준 사람이요 자신에게 모든 것을 주기까지 사랑해주는 존재입니다. 부모보다 더 가까운 존재는 없습니다. 또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그 부모를 통해 자신의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때로 부모가 자신보다 인간적으로 부족할 수 있습니다. 자식은 명문대학을 나왔지만 부모는 학교도 다니지 않아 책을 읽지 못할 수 있습니다. 또 부모가 인간적인 연약함으로 인해 자신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아버지로인한 상처를 많이 받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럴지라도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땅에서 네 생명이 길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이는 단지 효자가 오래 산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부모를 공경할 때 하나님은 그들을 약속의 땅에 오래 오래 살도록 축복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또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살인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께 속해있고 하나님이 주셔서 하나님의 때에 거두어 가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생명을 해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자살도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간음하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결혼은 하나님이 이루신 것입니다. 결혼은 하나님 앞에서 두 남녀가 이루는 계약입니다. 두 사람은 배우자를 하나님이 보내주신 배필로 영접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가정을 파괴하는 주범이 바로 간음입니다. 간음은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의 질서를 파괴하는 일이요 그 가정에서 자라난 자녀들에게 말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악한 죄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간음에 대해서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28)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 마음으로라도 간음을 경계함으로 하나님이 이루신 가정을 거룩하게 지켜야 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율법 중에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고 물었던 율법사에게 첫째 계명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고 둘째 계명으로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는 인간 관계의 원칙이 다른 사람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부모를 내 자신과 같이 사랑할 때 공경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자신과 같이 사랑할 때 그 사람을 죽이거나 말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간음죄를 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말은 “생각대로” “내 마음대로”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내 마음대로 죄를 짓고 내 마음대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내 마음대로, 내 생각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다른 사람을 내 자신과 같이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유인 백성,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의 모습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사랑하는데서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대 사람들이 고통하는 이유는 자기 중심적인 마음을 극복하지 못하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자기 중심적인 삶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고통을 당합니다. 불효자 때문에 피눈물을 흘리는 부모님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죽이는 말로 인해 상처받고 고통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간음을 로맨스라고 미화하는 자기 중심적인 사람들로 인해 가정이 파괴되어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가 자기 중심적인 마음으로 인해 파괴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런 세상에서 다른 사람을 사랑함으로 이 관계를 회복시키는 사람으로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함으로 파괴된 관계를 회복시키는 제사장 나라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셋째, 물질과의 관계(15-17)
하나님은 여덟째 계명으로 도둑질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홉째 계명은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열 번째 계명은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계명은 물질에 대해서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십니다. 이는 한마디로 탐심을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탐심은 다른 사람의 물건을 도둑질하게 만듭니다. 탐심 때문에 거짓 증거를 합니다. 그런데 탐심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죄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탐심을 정당화하며 살아갑니다. 탐심은 물건에 대한 과도한 욕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탐심을 만족시켜주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마음에서 일어나는 탐심을 만족시키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나 탐심은 만족할 줄 모르는 괴물과 같습니다. 블랙홀과 같이 모든 것을 흡수해버립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것보다 조금 더 많은 것을 갖고자 합니다. 200만원을 버는 사람은 지금보다 조금 더 봉급을 받으면 만족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0억만 소유하면 더 이상 욕심 내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봉급이 많으면 많을수록 좀더 많은 봉급을 원합니다. 그래서 미국의 월가에서는 국가의 보조금을 받으면서도 펀드 매니저와 CEO 들이 천문학적인 연봉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탐심은 하나님으로 채워야 할 우리의 마음으로 물건으로 채우고자 하는 타락한 본성에서 출발합니다. 사도 바울도 탐심의 문제로 깊이 탄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골로새서에서 탐심을 우상숭배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럼 이런 탐심을 어떻게 물리칠 수 있습니까? 이런 탐심을 물리치는 길은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으로 감사하며 자족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족하는 마음이 있을 때 탐욕의 시대에 우리는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이 십계명은 그들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가르쳐주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요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그들은 하나님 한분만을 사랑하며 섬겨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함으로 배려하고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물질에 대한 탐심을 극복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물질과의 관계를 회복할 때 우리는 이시대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십계명을 통해 관계를 잘 맺고 유지하는 삶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