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 교회가 대면해야 할 물음

 

우리에게는 자유가 있어서 악을 선택할 수도 있고, 주님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신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선택해서 대사명을 실천할 수도 있고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 자유라는 이 중요한 주제에 대해서 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창조 때로 거슬러 올라갑시다. 왜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짓지 않도록 만들지 않으셨을까요?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지을 수 있는 것을 아시면서도 왜 우리를 만드셨을까요? 하나님은 다 알고 계셨을텐데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이유는 오직 자유를 가진 사람만이 사랑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선택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자유를 오용할 수 있음을 아시면서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 받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미 구속의 길을 계획해 놓으셨습니다. 그 계획이 펼쳐짐에 따라 우리는 선택할 자유와 ‘하나님을 사랑할 자유’를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위해서 지옥이 마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선택했기 때문에 그곳에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했습니다. 전도는 이 선택을 가지고 사람들과 대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 아들을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는 초청이 바로 복음입니다.

이 자유와 전도는 어떤 관계가 있나요?
전도는 이 좋은 소식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전도는 타락한 사람들, 응답할 자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방법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응답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에게 이 은혜가 주어진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복음을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 주어서 그 사람들로 하여금 선택해야 할 일이 있음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전도를 통해서 자기의 사람들을 땅 끝에서부터 모으실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하지 않으신다면 신학을 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전도는 교회가 생겨나도록 만들어 줍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다면 복음은 전 세계에 제시되어져야 합니다.

그럼,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나요?
저는 그 점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인정합니다. 감사하게도 저는 심판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저는 복음을 들었던 사람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복음을 들었는데, 그리고 나서도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하기를 거절했다면 심판날에 어떻게 주님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교회가 대면해야 할 물음입니다.
   그래서 저는 전도에 참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저는 할 수 있는 한 더 효과적으로 전도하기 원합니다. 저는 전도가 ‘교회의 최우선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전도를 떠나서는 교회조차도 성립하지 않습니다. 교육이나 상담이나 인간의 복지 등과 같은 교회의 다른 사역들은 전부 전도를 떠나서는 성립될 수 없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전도를 하는 방법들과 전략들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방법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꺼이 사용하시는 방법은 어떠한 것이든 다 좋은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미디어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불행하게도 대개 이 세상의 자녀들이 빛의 자녀들보다 더 지혜롭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따라잡아야 합니다. 그러나 방법은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전도의 목적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끄는 것입니다.

교수님은 어떻게 문화를 전도 방법에 적용하시겠습니까?
각 문화마다 효과적인 방법이 다릅니다. 어떤 문화에서는 이런 방법이, 또 어떤 문화에서는 저런 방법이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상황에 맞게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가 결정해야 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인터넷이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전도와 세계 선교를 위해서 인터넷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이 우리 눈 앞에 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우리편의 전문가들은 아직 양성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터넷을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영화가 나와서 영화 산업이 발전했듯이, 우리는 인터넷을 취해서 선한 목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그에 대해서 비평만 한다면 마귀가 사용하도록 내버려 두게 됩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모든 수단들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의 자리에서 시작하십시오


때때로 우리가 사람들에게 반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려고 너무 조심해서 오히려 전도를 못하는 일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려고 할 때 조심해야 하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전도를 해야 합니까?
여러분은 불신자들이 처해 있는 자리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불신자들의 문화에 대해 배워서 그들이 이미 이해하고 있는 것에서부터 쌓아 올려야 합니다.
   복음의 핵심적인 내용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님께서 오셨고,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으며, 참된 믿음과 회개를 통해 우리가 용서 받을 수 있으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불신자와 우리 사이를 건너서 그들에게 들어갈 수 있느냐는 상호간의 우정과 신뢰와 존경에 달려 있습니다. 가장 효과적인 전도는 잘 이루어진 관계에서 이루어집니다. 친구 대 친구의 관계, 사랑하고 있는 사람 대 사랑 받고 있는 사람의 관계에서 자라납니다. 모든 전도는 궁극적으로는 개인 전도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겠다는 충동을 느껴서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으로 전했다면, 그 결과에 대해서는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맡기시기 바랍니다. 때로 우리의 적은 우리 자신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비효과적이라고 생각하거나 아무 말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냥 포기해 버리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직접 시도해 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만약 사랑이 우리의 마음 가운데 있다면 우리의 실수를 넘어서 역사하실 수 있는 성령님을 믿어야 합니다. 결과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십니다.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전도했기 때문에 감옥에 던져졌습니다. 저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전도하다 감옥에 들어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없습니다. 우리는 좀더 급진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진짜 중요한 일이 진행되고 있음을 세상이 알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부드러운 태도로 주저하면서 과묵한 사람이 되어버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세상 사람들은 거의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좀더 열심을 낸다면 사람들은 우리에게 주목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교수님께서 존경하는 전도자들과 지도자들에 대해서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 저는 빌리 그래함을 아주 존경합니다. 저는 그를 40년 이상 알고 지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저에게 커다란 격려를 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게는 루이스 팔라우와 같은 다른 전도자 친구들이 있습니다. 오늘날 북미주에서 제가 알고 있는 가장 훌륭한 젊은 전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은 스티브 윙필드(Steve Wingfield)입니다. 그는 전에 제게 배웠던 학생이었습니다. 그 사람을 아주 존경합니다.
   전도자로서 제게 영향을 주었던 사람은 구세군에 있는 라일 레이더(Lyle Rader) 사관입니다. 그의 아들 폴(Paul)은 저의 학생이었는데, 그 학생이 제게 자기 아버지를 소개해 주었고, 우리는 아주 친밀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거의 35년 동안 우리는 서로 교제하면서 지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어떤 사람보다도 그는 아주 열심있고 효과적인 개인 전도자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존경하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글을 통해서 알게 된 사람들입니다.

 

완성되어 가는 하나님의 계획

 

「주님의 전도 계획」이라는 교수님의 책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책은 35년 전에 썼습니다. 사실 그 책은 몇 개의 강의를 통해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내용의 대부분은 제가 가르쳤거나 몇 해에 걸쳐서 이끌었던 소그룹 성경 공부 모임을 통해서 나온 것입니다.
   저는 그동안 20권 정도의 책을 썼지만 제 자신을 작가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글을 쓰는 것은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내용을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풍성함에 대해서 놀라움을 전해 주기 위한 것입니다. 저는 틈틈이 강의 시간 사이사이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책을 어떻게 사용하셨는지를 보면 오히려 제가 놀랍니다.
   바로 오늘 아침에 저는 누군가로부터 그 책을 중국어로 번역하고 싶다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저는 번역 허가를 요청하는 서신들을 한 묶음 가지고 있는데 거의 100개의 언어가 넘습니다. 어떤 언어들은 여섯 가지에서 열두 가지의 다른 제목으로 번역되기도 했습니다. 아주 감사한 일입니다.

교수님은 구원과 전도를 성경 전체를 통해서 보고 계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아침에 저는 자신의 영광을 온 땅에 드러내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성경 전체를 어떻게 관통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강의를 준비했습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 모든 일들이 결과적으로 나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6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기의 형상대로 만드신 것에 대해서 슬퍼하시고, 그 세대를 쓸어버리실 결심을 하셨습니다. 오직 의인인 노아와 그의 가족들만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영광으로 온 땅을 채우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 바벨탑이 나옵니다. 거기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선함을 증명하고자 탑을 세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거만한 계획을 무마시키시고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셔서 그들을 땅 위 전역에 흩어 버리십니다.
   그리고 갈대아 우르 지방의 한 사람에게 초점이 모아지게 됩니다. 그 사람은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가 처해 있던 이교적인 환경을 떠나서 나오라고 명령하십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순종해서 떠났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장막에 사는 것에 만족했으며, 자기가 이 세상에서 나그네이며 순례자라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다름아닌 하나님 자신이 건축자로서 지으실 도시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천국을 바라본 것입니다.
   참으로 기이한 생활이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가 믿었으므로 내가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고 땅의 모든 족속들이 그 나라 안에서 복을 받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온 땅 위에 하나님의 영광으로 채우시겠다는 목적을 차질없이 이루어 나가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해서 구원의 약속을 이루고 계시는군요.
구원의 약속은 이삭과 야곱과 왕들과 선지자들을 통해서 계속 반복됩니다. 하나님은 나라들을 이끌어 그를 찬양하도록 만드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해주는 일종의 중개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선택받은 민족은 그들 자신 안에 갇혀서 전도의 비전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거룩하게 되어서 주변의 나라들로 하여금 그들의 하나님을 알고 싶어 하도록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거룩함으로 빛나는 나라를 만드는 대신에 이스라엘은 이웃이 섬기고 있던 이교의 신들을 숭배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말씀하시고 그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 유배를 살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일로 해서 온 땅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채우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은 결코 변경되지 않았습니다. 선지자들이 말했다시피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이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온 땅에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때가 차매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태초부터 약속되었던 분으로 마귀인 뱀을 그 발 아래 두실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갈보리에서 자신의 할 일을 다 완수하시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다음 하늘로 복귀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대사명입니다.
   예수님이 내려주신 대사명은 하나님의 태초의 계획을 그대로 되살리는 것이었습니다. 대사명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단지 어떻게 창조시에 가졌던 하나님의 계획이 완성되느냐를 제자들에게 말씀해주고 계셨을 뿐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그 계획은 완성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만국에서부터 자기 백성들을 불러 모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 싸고 찬송을 부릅니다. 그것이 실재입니다. 그것이 영원입니다.
   여러분이 일단 그 비전을 갖게 되신다면, 이 세상이 가지고 있는 매력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실재 가운데서 사셨습니다. 그래서 고통과 수치 너머에 있는 그 기쁨을 보면서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마침내 모든 무릎이 우리 주님 앞에 꿇게 될 것이며 모든 입술이 하나님에 대해 칭송을 발할 것입니다.

어떤 전도 자료들을 읽도록 학생들에게 추천하고 계십니까?
제가 가르치고 있는 입문 코스에서 저는 학생들에게 거의 백 명 이상의 저자들을 포함하고 있는 도서 목록을 줍니다. 그 목록이 매우 선택적이라는 점을 그들에게 주지시킵니다. 그 저자들 가운데 몇몇 사람들은 여러 권의 책들을 썼습니다. 도서관에 가서 보십시오. 거기에 가보시면 그 주제에 대해서 쓴 책이 책장 몇 개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학생들에게 성경을 멀리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성경만이 오류가 없는 우리의 유일한 교과서입니다.

 

세상 너머 하나님 나라를 보라

성경에서 부흥이 묘사되어 있는 부분이 있습니까?
요엘서를 보면 세계 부흥에 대한 예언이 있습니다. 성령이 모든 육체에게 부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는 이 약속을 오순절에 인용하고 있어요. 그날 거기서 언급되는 나라들은 겨우 열다섯 개였죠. 하지만 요엘서의 예언은 지구 전체를 언급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 예언이 완전히 성취된 것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대개 예언은 즉각적인 적용과 장기적인 적용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순절 사건이 그 예언 성취의 시작이라고 이해합니다. 그리고 그 예언이 가지고 있는 장래적인 측면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마침내 온 땅에 전파되는 마지막 때에 있을 성령의 부으심이라고 봅니다.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오순절은 과거에 이미 발생했습니다. 그 사건은 다시 되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순절의 효과는 우리가 온 열방을 제자 삼으러 나갈 때마다 계속될 겁니다. 과업이 완수될 때에야 예언은 성취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23, 24장과 같은 예언에서  역사는 대환난의 시기, 슬픔과 정치적인 격동과 천체에 재난이 있는 시기에 끝날 것으로 보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었던 주후 70년에 이 예언에 대한 단기적인 성취가 있었습니다만, 궁극적인 재난은 앞으로 올 것입니다. 여기에 추수의 첫 열매를 가져오는 이른 비와 땅의 귀중한 곡식들을 추수하는 일과 주님의 재림 이전에 있는 늦은 비에 대한 예수님의 교훈을 덧붙일 수 있겠습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서, 저는 세계적인 부흥에 대한 예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이전에 전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던 동요의 시기가 오게 되겠지만, 온 땅에 걸쳐서 하나님의 성령의 강력한 부으심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배교가 편만해서 심지어 교회가 나누어지기도 할 것이며, 성도들은 고난을 당하고 순교를 예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와중에서도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과감한 전도가 일어나 그리스도의 재림을 재촉할 것입니다.

고난 속에서도 부흥이 일어난다는 말씀이군요?
고난은 교회 성장의 원칙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 오늘날은 많이 들어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교회 성장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들은 대개 고난에 관한 얘기를 많이 하지 않죠. 왜냐하면 그 책들은 서구 세계의 풍요로움 가운데서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만약 중국이나 네팔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책을 쓴다면 다른 이야기가 될 겁니다. 한국의 부모 세대 역시 교회 성장에 대해 상당히 많은 것을 우리에게 이야기 해주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부흥 가운데 태어났고, 양육 받았습니다. 새로 일어난 세대의 위험은 부흥을 낳기 위해 지불했던 선조들의 대가를 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지내게 될 처소를 가질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처럼 저는 영원한 기초들을 가지고 있는 도성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옛 성도들이 먼 곳을 바라보았던 그 눈길을 아십니까?
   저는 저의 아버지가 저를 보았던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눈은 마치 저를 뚫고서 그 너머에 있는 것을 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의 눈길은 저 먼 곳에 있었습니다. 그는 그 도성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 세상이 지나가는 것임을 알만큼 충분히 오래 살았습니다. 저 역시도 이 세상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은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토대를 튼튼히 가지고 있는 도성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위엣 것을 바라보라,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저의 애정을 하나님에게 두기 위해 애를 쓰며 노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들의 영혼 이외에는 어떤 것도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을 묵상하면서 얻은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종말에 있을 고난에 대한 관찰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요한계시록 안에는 찬송의 장면이 있습니다. 5장에 천사들로 시작하여 옷을 입은 장로들과 천군 천사들이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와 바다 속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과 등장합니다. 6장은 세상에 대한 심판들이 전개됩니다.
   순교자들이 부르짖는 소리를 듣게 되며, 이 살육을 언제까지 허용하실 것인지 하나님께 묻는 소리를 듣습니다. “어째서 의로운 자가 고난을 받습니까?” 라는 것은 자연스런 질문이며 성경 전체에 흐르고 있는 질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순교자들에게 어떻게 대답하고 계시는지 기억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흰옷을 입혀 주십니다. 그 시기는 아직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이 일을 어떻게 경영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나에게 말하려고 시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순교자들이 승리했다는 것을 알려 주십니다.
   우리는 왜 이토록 많은 불의와 소요와 악이 있는지 그 이유를 모릅니다. 왜 하나님은 그 일을 중단시키지 않으실까요? 하나님은 아직 열방으로부터 자기 백성들을 다 모으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아직 땅 위의 모든 민족들에게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아직 계획을 중단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심지어 하나님 백성들의 고난도 막을 수 없습니다.

한국 성도들에게 어떤 말씀을 들려주고 싶습니까?
눈길을 하늘 보좌에 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선순위들을 영원으로부터 이끌어내기 바랍니다. 항상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십시오.
   둘째,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으로 측정하십시오. 그분이 우리의 모델입니다. 온갖 논쟁과 갈등과 신학 때문에 예수님에 대한 여러분의 사랑이 흔들리도록 내버려두지 마십시오.
   셋째, 여러분의 삶을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 아래 두십시오. 언제나 무릎을 꿇고 성경을 여러분 앞에 펼쳐 놓으십시오. 그리고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하시는 모든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힘을 내십시오. 가장 좋은 일은 아직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사진·김연희/연세대연합신학원 상담학 전공. 하와이 열방대학제자훈련학교. 트리니티 복음주의신학교 종교교육 석사와 목회학 석사. 지금은 박사과정 책임자인 반 게메렌 교수 지도하에 구약학 박사과정을 이수하기 위해 준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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